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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시골 살이

잔인한 유전자

by 봉돌 2021. 7. 4.

오랜만에 어미 닭의 날개 밑에서 쉬다가,

종종종 어미를 따라다니는 병아리를 본다.

부화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라, 어미가 낳은 알을 직접 품어서 부화한 병아리들이다.

얼마나 이쁜지..

품종은 청계란다. 

닭알-달걀이 푸르스름한 빛을 띄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옆집 닭들은 거의 천국에서 살고 있다.

지렁이나 벌레를 잡아 먹으면서 온 산을 누비고 돌아다니다가가

때가 되어 구우구우 하고 부르면,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모르게 여기저기서 마구 나타나 식사를 즐긴다.

주인도 자신이 몇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워낙 여기저기 돌아 다녀서 세어 볼 수도 없고, 굳이 셀 필요도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정란을 주워다 먹고, 가끔씩 한마리씩 잡아 고아 먹으면 그만이다.

 

닭은 일부다처제이다.

한마리의 수탉이 주변에 있는 모든 암탉들을 상대한다. 

이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탉들은 정말 피터지는 싸움을 한다.

두 시간이 넘도록 승부가 날 때까지 잔인한 싸움을 하고,

오직 승리한 한 마리의 수탉만이 모든 암탉을 소유한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불쌍하게도 주변을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암탉을 탐하려고 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대장 수탉한테 또 다시 수모를 당해야한다.

닭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보다 강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진화해 왔다.

 

그러나 닭의 유전자는 이기적일 뿐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하다.

번식을 위해 매일 알을 낳아야 하는 비극적인 동물이 닭 말고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낳는 족족 사람들에게 알을 빼앗겨야 하는 슬픈 운명의 닭들은  매일 알을 낳는 것은 대안으로 삼았다.

그것이 비록 부화할 수 없는 무정란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모르겠다. 

암탉이 부화를 위해 알을 품고 있을 때도 산란을 하는지까지는...

 

슬픈 운명의 암탉이 낳은 달걀.

그것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유정란.

나를 위해 기꺼이 내어 준 이웃집 암탉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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