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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귀어

귀인(貴人)

by 봉돌 2021. 5. 4.

새해 운을 점치는 토정비결 같은 점괘에는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나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와 같은 풀이가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남쪽으로 와서 귀인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배형을 만난 것은 작년 경상남고 귀어학교에서였다.

귀어 학교는 두달 가까이 같이 먹고 자고, 같이 강의실에서 꾸벅꾸벅 졸다보니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친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도시와 다름없는 통영이나, 길거리 마다 땅 매매 광고가 있는 남해를 제기고, 아직 촌 냄새가 물신나는 고성을 선택했다.

배형은 마침 고성 토박이였고,  하사람의 인연이라도 절실했던 나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배형이랑은 어쩐 일인지 배짱이 맞았다.

촌에 살지만 어업을 하지 않는 재촌비어업인에게도 귀어 자금이 지원되는데, 배형은 새우 양식업을 하기 위해 귀어학교에 입학을 했더랬다.

그러나 배형에게는 작은 배가 한 척 있었고, 이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 주 지낸 귀어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귀어학교 중퇴자인 셈이다.

퇴교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나는 배형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말았다.

어업 실습 과정에 잘 곳이 마땅치 않았을 때, 주말에만 오는 집이긴 하지만 기꺼이 재워 주었고

이 동네에서 고기를 제일 잘 잡는다는 친구을 소개 시켜 주기도 했다.

일을 보기 위에 가끔씩 일으 보러 내려 갈 때도 나를 언제 보았다고 기꺼이 집을 내어 주었다.

이 동네에서 나서 이 동네에서 자란 토박이임으로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금방친해 질 수 있었던 것도  다 배형 덕분이다.

 

배형은 소띠, 나보다 한 살 아래이다.

고성 하일면  토박이로 평생을 포크레인 기사로 일을 하면서 주말이면 짬짬이 고향집을 가꾸었다.

굴삭기는 그 위력이 너무도 막강하여 터를 닦고, 길을 내는데는 그만이다.

다래밭을 민들어 다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최근에는 아시바로 불리는 쇠 파이프를 조립하여 열매가 처지지 않도록 하는 공사를 쉬지도 않고 해 내었다. 

최근에는 새우 양식장 허가를 신청해 놓고 있는데, 공사가 시작되면 또 얼마나 움직일지 눈에 선하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을 처음 본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다래밭에서 아시바를 조립하고 공사현장으로 출근하고, 퇴근이 빨라져서

아직 해가 남아 있으면 다시 밭으로 나간다.

부지런함은 그냥 생기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기지 않고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다.

 

어쨋거나 나는 남쪽으로 내려와서 귀인을 만난 것이 틀림없다.

다만 이 웬수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난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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