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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귀어

산 넘어 산

by 봉돌 2021. 5. 6.

 

 

집 계약을 끝내고, 잔금 대출 때문에 수협에 전화 했더니,

군청 수산과에서 사업실행계획서를 떼서 신분증과 도장만 가져 오면 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준비를 위한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였다.

어마 무시한 서류 목록.

군청가서 주민등록 등본, 초보 떼고,

통영 세무서 가서 사업자 등록증 만들어 증명원 떼고,

면사무소가서 전입세대 열람 확인서 떼고,
계약한 집으로 주소지를 옮겨야 한대서, 계약만 한 집으로 다시 전입신고 하고,

마누라 한테는 본인 주민등록 등본을 떼서, 등기 속달로 부치라고 하고..

두툼한 서류에 이름 쓰고, 주소 쓰고 도장찍고,쓰고 또 찍고...

도대체 웬 서류가 그렇게 많아야 하고,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느낌에는 '꼬우면 말든가' 였다.

 

복병은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에서 감정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고.

이 감정액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농신보는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의 줄인 말로, 담보력이 미약한 농림수산업자에게 신용보증서를 발급하는 기관이다.

물론 이 기금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출연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택 담보 대출인데, 농신보라는 것이 튀어 나왔고, 보기에 수협의 상전인 듯 싶었다.

귀어학교에서도 듣지 못한 일인데, 왜 계약을 하기전에 알려 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자기도 처음 있는 일이란다.

감정평가액이 적게 나와서 계약금을 제하고 내가 부담해야할 차액이 발생하고,

만일 그 차액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자금 집행이 안된다고 한다.

'여보세요, 자금 집행이 안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계약금 2천만원을 날리게 되는 겁니다.

왜 남의 인생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네요.'

꾹꾹 눌어가며 내가 뱉은 말이다.

 

담당자는 한 마디 더 부친다.

'양해를 구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잔금 결제일을 열흘 정도 더 늦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감정 평가가 끝나고, 농신보에서 서류가 넘어 와야 대출이 되어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계약서에는 잔금 결제일이 5월 7일로 되어 있는데, 열흘을 늦추면 계약위반이 될 것이고,

매도자가 계약을 파기하면 꼼작 없이 계약금을 다시 날려버릴 판이 되어 버렸다.

처음 잔금 결제일을 5월 7일로 한 것도, 담당자에게 언제로 하면 좋겠냐고 물어봐서,

보름의 여유면 될 것 같다는 언질을 받고 잡은 날짜인데 말이다.

내가 양해할 사항이 아니라 매도자가 양해할 사안인 것이다.

매도자에게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바꾸어 주었다.

전화 너머로는 당연히 흥분한 큰 목소리가 들려 올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욕을 먹는 담당자도 어떻게 보면 참 딱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귀어 자금은 정부의 홍보에 따르면, 창업자금 최대 3억원, 주택자금 7천5백만원까지 가능하다.

5년거치 10년 분할 상환으로 이자율이 2%로 나머지 이자는 정부에서 부담을 하며, 담당 금융기관은

수산업협동조합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주택 매매를 하면 근저당이 설정되고, 배를 사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감정 평가가 더해져서 새로 배를 건조한다고 해도, 감가 상각등의 이유로 대출 가능액이 대폭 줄어든다.

더 황당한 것은 배를 건조해서 어업허가까지 붙혀 오면, 그 때 감정을 해서 자금이 집행된단다.

어쩌라고.

외상으로 어업허가를 사고, 외상으로 1억이 넘는 배를 건조하라고? 

달러 빚을 내어서, 본인 명의로 배를 만들고, 자금이 집행되면 갚으라고?

참 사람을 구차하게 만들고, 편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제 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또 무슨 스릴 넘치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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