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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단상

오래된 습성

by 봉돌 2021. 5. 16.

나의 손은 눈보다 빨라서 무조건 반사를 한다.

답답하게 자란 향나무며 동백 가지를 치다가,

수도 꼭지가 부러져 나무를 박아 놓은 것이 보이면 그 길로 부속품을 사러 간다.

잠깐 커피 타러 왔다가 오래된 장농이 눈에 띄면 해체를 해서 쓸만한 합판을 창고에 두려고 갔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화목보일러가 눈에 띄면, 이것 저것 손봐서 소각로로 개조한다.

승질은 여전히 급해서 눈에 띄는 일이 있으면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돌아 보면 일이고, 끝이 있는지 없는지 벌써 몇 일째 이러구 집에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다.

뭐지?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거지?

어쩌면 이렇게 몸을 재게 움직이게 만든 것은, 땀흘린 뒤의 미래를 상상하는 재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성취감에 대한 기대, 그것이 만든 오래된 습성.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 될 미래의 재미를 지금 더 즐기고 조금 더 음미하기 위해,

한걸음만 더 천천히, 천천히...

 

Take it easy,

Andante, an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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