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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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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밥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우연찮게 젯밥을 맛있게 얻어 먹었다. 경상도 사람이지만 경상도 음식을 별로 쳐주지 않고 살았었는데, 오랜만에 경상도 음식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난 밤에 지낸 제삿밥을 동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데 처음 먹어 보는 음식도 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비빔밥이었다. 안동에 헛 제사밥이란 것도 있지만 여기 비빔밥은 좀 특별하다. 고사리며 무나물은 물론 미역까지 넣어서 미리 비벼서 상에 나온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된다. 특이한 것은 밥 때문에 비비기가 힘들지 않다는 것인데, 아마도 탕국 국물을 둘러서 그런것이 틀림 없었다. 따로 차린 이 탕국이 별나다. 소고기랑 무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두부를 썰어 .. 2021. 5. 23.
오래된 습성 나의 손은 눈보다 빨라서 무조건 반사를 한다. 답답하게 자란 향나무며 동백 가지를 치다가, 수도 꼭지가 부러져 나무를 박아 놓은 것이 보이면 그 길로 부속품을 사러 간다. 잠깐 커피 타러 왔다가 오래된 장농이 눈에 띄면 해체를 해서 쓸만한 합판을 창고에 두려고 갔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화목보일러가 눈에 띄면, 이것 저것 손봐서 소각로로 개조한다. 승질은 여전히 급해서 눈에 띄는 일이 있으면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돌아 보면 일이고, 끝이 있는지 없는지 벌써 몇 일째 이러구 집에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다. 뭐지?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거지? 어쩌면 이렇게 몸을 재게 움직이게 만든 것은, 땀흘린 뒤의 미래를 상상하는 재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성취감에 대한 기대.. 2021. 5. 16.
젊게 사는 법 '자네가 이 동네에서 제일 젊어' 이 한마디에 차출 당해 새벽 이슬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철골만 남아 있는 비닐 하우스에 비닐을 치러 갔다. 몇 사람이 낑낑 대며 비닐을 끌어 당기며 씌우고, 비닐이 날아가지 않게 꾸불꾸불한 철사를 돌리고 돌리고... 젊게 사는 법, 어렵지 않아요. 나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살면 된답니다. 2021. 5. 14.
산 넘어 산 집 계약을 끝내고, 잔금 대출 때문에 수협에 전화 했더니,군청 수산과에서 사업실행계획서를 떼서 신분증과 도장만 가져 오면 된다고 했다.아니나 다를까, 서류준비를 위한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였다.어마 무시한 서류 목록.군청가서 주민등록 등본, 초보 떼고,통영 세무서 가서 사업자 등록증 만들어 증명원 떼고,면사무소가서 전입세대 열람 확인서 떼고, 계약한 집으로 주소지를 옮겨야 한대서, 계약만 한 집으로 다시 전입신고 하고,마누라 한테는 본인 주민등록 등본을 떼서, 등기 속달로 부치라고 하고..두툼한 서류에 이름 쓰고, 주소 쓰고 도장찍고,쓰고 또 찍고...도대체 웬 서류가 그렇게 많아야 하고,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느낌에는 '꼬우면 말든가' 였다. 복병은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에서 .. 2021. 5. 6.
호구가 나타났다. 거주지 우선 원칙. 어촌에서는 배가 있어도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댈 수가 없다. 따라서 귀어하면서 가장 먼저 알아 보아야 할 것이 집을 구하는 일이다.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집이라 처음에는 빈 집에 한 일년 월세를 살면서 천천히 구해 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빈집이 있어도 내어 주는 곳이 없었다.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배형까지 나서서 백방으로 인근 동네까지 알아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고성 읍내까지 나가서 부동산이란 부동산은 싹 다 뒤졌고, 연락처를 남겨 두었다. 몇 시간쯤 지나 한 부동산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주소지를 찾아 가본 결과, 꽤 괞찮은 집이였다. 내 놓은 금액은 8천5백만원이었다. 따로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절충을 하면 8천2,3백만원에 계약할 수 있지.. 2021. 5. 6.
귀인(貴人) 새해 운을 점치는 토정비결 같은 점괘에는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나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와 같은 풀이가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남쪽으로 와서 귀인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배형을 만난 것은 작년 경상남고 귀어학교에서였다. 귀어 학교는 두달 가까이 같이 먹고 자고, 같이 강의실에서 꾸벅꾸벅 졸다보니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친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도시와 다름없는 통영이나, 길거리 마다 땅 매매 광고가 있는 남해를 제기고, 아직 촌 냄새가 물신나는 고성을 선택했다. 배형은 마침 고성 토박이였고, 하사람의 인연이라도 절실했던 나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배형이랑은 어쩐 일인지 배짱이 맞았다. 촌에 살지만 어업을 하지 않는 재촌비어업인에게도 귀어 자금이 지원되.. 2021. 5. 4.